성폭력에 저항했더니 '가해자'로... 60년 만에 열린 재심, 그 의미와 주요 판례

최근, 60년 전 성폭력에 저항하다 상해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한 여성의 재심 재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재심 청구 5년 만인 2023년 5월 23일, 검찰이 해당 여성에게 무죄를 구형하며 법정에서 사죄의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처럼 한 개인의 기나긴 투쟁과 사법부의 전향적인 결정이 맞물린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법과 인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아래에서는 이 사건의 재심 결정 내용을 중심으로 사건의 개요와 대법원의 판단, 그리고 이 결정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상해죄 재심 결정

1. 사건 개요: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60년 전 그날

  • 사건 발생: 1964년 5월, 당시 19세였던 여성 A씨는 한 남성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습니다. 가해 남성이 강제로 입을 맞추며 혀를 입안에 넣자, A씨는 저항의 의미로 남성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 행위였습니다.
  • 뒤바뀐 가해자와 피해자: 그러나 사건의 결과는 상식과 달랐습니다. 가해 남성은 A씨를 중상해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A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구속 기소했습니다. 반면, 가해 남성의 강간미수 혐의는 불기소 처분되었습니다.

유죄 판결: 결국 A씨는 1964년 9월, 중상해죄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습니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한순간에 가해자로 낙인찍힌 것입니다.

상해죄 재심 결정

2. 재심 청구 배경: 60년 만에 용기를 낸 이유

A씨는 60세가 넘어 학업을 시작하며 여성 인권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자신의 경험이 부당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용기를 내어 2020년 5월,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재심은 유죄가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때, 그 판결을 바로잡기 위한 비상 구제 절차입니다.

상해죄 재심 결정

3. 대법원의 판단: 무엇이 재심을 가능하게 했나?

대법원은 A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며, 원심의 재심 기각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습니다(대법원 2024. 12. 18. 선고 2021모2650 결정). 대법원이 재심을 인정한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수사 검사의 직무상 범죄 인정: 대법원은 1964년 당시 수사 검사가 영장 없이 A씨를 불법적으로 체포·감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검사가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감금한 행위(형법 제124조)에 해당하며, 이러한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는 형사소송법상 명백한 재심 사유가 됩니다. 
  •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인정: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물적 증거가 부족했지만, 대법원은 A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논리적이며, 허위로 진술할 동기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신문기사, 재소자 인명부 등 간접적인 자료들도 A씨의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것입니다. 
  • 과거 재판 과정의 부당성 지적: 대법원은 당시 재판부가 정당방위 여부와 무관하게 A씨의 ‘순결성’에 대한 감정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 것은 인간의 존엄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 매우 부당한 처사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상해죄 재심 결정

4. 재심 결정이 가지는 의미

이번 대법원의 재심 결정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 성폭력이라는 급박하고 부당한 위협에 맞선 저항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이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큰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 잘못된 판결의 시정: 60년 전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려진 잘못된 판결을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사법 신뢰를 회복한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 피해자 중심주의의 확립: 재판의 초점이 피해자의 행실이나 품행이 아닌, 가해 행위의 부당성과 피해자의 방어 행위의 정당성에 맞춰져야 한다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상해죄 재심 결정

주요 관련 판례

  •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기준 (대법원 2020. 8. 20. 선고 2020도6965,2020전도74 판결)
    • 법원은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에 기초하여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 판결입니다.
  • 재심 사유로서 ‘새로운 명백한 증거’의 의미 (대법원 1983. 4. 7. 선고 83모11 결정)
    • 재심을 청구하려면 ‘새로 발견된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기존 판결의 증거보다 객관적으로 더 우월한 가치를 가지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당시의 불법 구금 정황 등이 새로운 증거로 인정될 수 있었습니다.
상해죄 재심 결정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재심이란 무엇인가요?
A: 재심은 유죄가 확정된 형사 판결에 대하여 사실 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발견된 경우, 판결을 받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 다시 재판을 여는 비상 구제 절차입니다. 억울하게 처벌받은 사람을 구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Q2: 어떤 경우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나요?
A: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 사유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①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나 증언이 위조 또는 허위임이 증명된 때, ②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③ 판결에 관여한 법관이나 검사가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때 등이 있습니다.

Q3: 재심이 결정되면 어떻게 되나요?
A: 법원이 재심 청구가 이유 있다고 판단하면 ‘재심 개시 결정’을 합니다(형사소송법 제435조). 이 결정이 내려지면 형의 집행이 정지될 수 있으며, 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형사소송법 제438조).

Q4: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왜 중요한가요?
A: 성범죄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목격자나 다른 물적 증거를 찾기 어려운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때로는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법원 역시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20도2433 판결).

이번 재심 결정은 한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우리 사회의 법과 인권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60년의 세월을 견디며 자신의 결백을 외쳐온 A씨의 용기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법원의 최종적인 무죄 판결을 통해 온전한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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