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죄, '항거불능' 상태 입증 & 책임 능력 판단 기준 - 술/약물, 심신미약 주장에 관하여
성범죄 중에서도 준강간죄는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범죄로, 일반 강간죄와는 다른 특수한 성격을 가집니다. 특히 술이나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피해자의 상태와 가해자의 인식, 그리고 책임능력에 대한 복잡한 법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최근 음주 관련 성범죄가 증가하면서 ‘블랙아웃’이나 ‘패싱아웃’ 상태에서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문제가 중요한 법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준강간죄 관련하여 항거불능 상태의 법적 의미와 입증 책임, 그리고 술이나 약물 상태에서의 책임능력 판단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준강간죄의 법적 개념과 구성요건
준강간죄는 형법 제299조에 규정된 범죄로,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 (유사강간) 및 제298조 (강제추행)의 예에 의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피해자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입니다.
준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성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 객관적 구성요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을 것, 행위자가 이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것
- 주관적 구성요건: 행위자에게 준강간의 고의가 있을 것 –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다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러한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를 말합니다. (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판결)

2. 항거불능 상태의 법적 의미와 판단 기준
가. 심신상실과 항거불능의 법적 정의
- 심신상실: 정신기능의 장애로 인하여 성적 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 항거불능: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합니다.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형법 제10조의 심신장애(책임능력 관련)와 준강간죄의 심신상실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형법 제10조의 심신장애가 행위자의 정신적·심리적 상태에 대한 묘사인 반면, 준강간죄의 심신상실은 피해자의 정신적·심리적 상태를 기술하는 개념입니다.
나. 항거불능 상태의 판단 기준
항거불능 상태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고려합니다:
- 객관적 상태: 피해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술·약물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 또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유로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
- 저항 가능성: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인지 여부
- 개별적 판단: 피해자의 나이, 성별, 체격, 지능, 성격, 행위자와의 관계, 주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대법원은 “피해자가 의식상실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지만 알코올의 영향으로 의사를 형성할 능력이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행위에 맞서려는 저항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였다면 ‘항거불능’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8도7190 판결)

3.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의 법적 차이
가. 블랙아웃(Black out)과 패싱아웃(Passing out)
- 블랙아웃은 의학적으로 “술을 마시는 동안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억상실”로 정의됩니다. 법적으로 중요한 점은 블랙아웃 상태에서는 기억장애만 있을 뿐, 당시 행동 자체는 의식적으로 통제 가능한 상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패싱아웃은 술이나 약물로 인해 의식 자체를 상실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기억의 형성 자체가 불가능하고, 행동에 대한 통제력도 상실됩니다.
나. 법적 판단에서의 차이점
- 의식 상태: 블랙아웃은 기억형성 실패만 있고 의식은 있는 상태인 반면, 패싱아웃은 의식 자체가 상실된 상태입니다.
- 준강간죄 성립 여부: 패싱아웃 상태는 일반적으로 준강간죄의 심신상실 상태에 해당하지만, 블랙아웃 상태만으로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 증명의 어려움: 블랙아웃은 주관적 경험이라 객관적 증명이 어려운 반면, 패싱아웃은 외부에서도 관찰 가능한 상태변화가 있어 상대적으로 증명이 용이합니다.
다. 대법원 판례
대법원은 의학적 개념으로서의 ‘알코올 블랙아웃’은 중증도 이상의 알코올 혈중농도, 특히 단기간 폭음으로 알코올 혈중농도가 급격히 올라간 경우 그 알코올 성분이 외부 자극에 대하여 기록하고 해석하는 인코딩 과정(기억형성에 관여하는 뇌의 특정 기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행위자가 일정한 시점에 진행되었던 사실에 대한 기억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알코올 블랙 아웃은 인코딩 손상의 정도에 따라 단편적인 블랙아웃과 전면적인 블랙아웃이 포함된다. 그러나 알코올의 심각한 독성화와 전형적으로 결부된 형태로서의 의식상실의 상태, 즉 알코올의 최면진정작용으로 인하여 수면에 빠진 의식상실(passing out)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음주 후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을 당하였음을 호소한 피해자의 경우, 범행당시 알코올이 위의 기억형성의 실패만을 야기한 알코올 블랫아웃 상태였다면 피해자는 기억장애 외에 인지기능이나 의식 상태의 장애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4. 항거불능 상태의 입증 책임과 증명 방법
가. 입증 책임의 소재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준강간죄에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과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고 이용했다는 사실은 검사가 입증해야 합니다.
나. 항거불능 상태의 증명 방법
항거불능 상태를 증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증거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 피해자의 진술: 사건 전후 기억의 유무, 의식 상태, 저항 가능 여부 등에 대한 진술
- 목격자 증언: 사건 당시 피해자의 상태를 목격한 제3자의 증언
- 의학적 증거: 혈중 알코올 농도 검사, 약물 검사 결과 등
- CCTV 영상: 사건 전후 피해자의 행동과 상태를 보여주는 영상 증거
- 통신 기록: 사건 전후 피해자의 문자메시지, SNS 활동 등

5. 가해자의 심신미약 주장과 책임능력 판단
가. 가해자의 심신미약 주장과 법적 효과
성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이 자신이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법 제10조 제2항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단순히 술을 마셨다는 사실만으로는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범행당시 술에 만취되어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가지고 심신미약의 주장과 같이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1985. 6. 25. 선고 85도964 판결)
나. 자초한 심신장애와 책임
중요한 점은 스스로 초래한 심신장애(자초 심신장애)의 경우에는 책임이 면제되거나 감경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고의로 술이나 약물을 섭취하여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책임능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졌는데, 상대방이 준강간죄로 고소할 수 있나요?
A: 단순히 술을 마신 상태라도 상대방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고, 이를 인식하고 이용했다면 준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의사표현 능력과 저항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2: 준강간 피해 당시 기억이 없는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기억이 없더라도 사건 전후 상황, 신체 증상, 주변인의 증언, CCTV 영상, 디지털 포렌식 증거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센터나 해바라기센터 등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고,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3: 상대방이 동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준강간죄로 고소당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상대방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사표현 내용, 주변인의 증언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즉시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Q4: 준강간죄의 공소시효는 얼마인가요?
A: 준강간죄의 공소시효는 일반적으로 10년입니다. 그러나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준강간죄는 공소시효가 없으며, 미성년자에 대한 준강간죄는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