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녹취만으로 이길 수 있을까? (회사의 책임과 법적 대응 방안)
팀장의 지속적인 성희롱, 그리고 이를 방관한 회사. 피해자는 손에 쥔 녹음 파일 하나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의 법적 판단 기준, 녹취 증거의 효력, 그리고 가해자뿐만 아니라 회사에 책임을 묻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1. 사건의 재구성: 9개월간의 고통과 회사의 외면
A씨는 2024년 10월부터 약 9개월간 직장 상사인 팀장으로부터 20회가 넘는 성희롱에 시달렸습니다. 팀장은 “신체 부위가 작다”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과 입에 담기 힘든 성적 언동을 일삼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A씨가 회사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회사의 조치는 “둘이 만나서 얘기하지 말라”는 소극적 지시에 그쳤습니다. 이는 가해자를 막지 못했고, 오히려 팀장은 A씨에게 “배신감이 든다”며 2차 가해를 저질렀습니다. 이로 인해 A씨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건강 악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2. 직장 내 성희롱, 법적 판단 기준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을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판단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는지가 중요한 기준입니다.
- 객관적 상황: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성적 굴욕감을 느낄 만한 상황이었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 업무 관련성: 반드시 근무 시간 중에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했다면 성립합니다.
A씨의 경우, 팀장의 발언은 명백히 성적 굴욕감을 유발하며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한 행위이므로 명백한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3. 결정적 증거, ‘녹취 파일’의 법적 효력
A씨의 가장 큰 고민은 ‘동료들의 증언 없이 녹취 파일만으로 법적 다툼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 강력한 증거 능력: 가해자가 스스로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은 소송에서 매우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합니다. 이는 가해자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자료 중 하나입니다.
- 적법성: 대화 당사자인 A씨가 상대방인 팀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성희롱과 같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불법행위의 입증에 있어 녹취는 매우 유용한 수단입니다.

4. 방관한 회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용자책임’
더 큰 문제는 회사의 미흡한 대응입니다. 우리 민법은 직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회사도 함께 책임을 지도록 하는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 성립 요건: 팀장의 성희롱 행위가 객관적으로 회사의 사무집행과 관련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회사는 사용자책임을 져야 합니다.
- 회사의 조치의무 위반: 회사는 A씨의 신고를 받고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거나 가해자를 징계하는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극적 대응으로 2차 가해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는 회사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5. 피해자를 위한 법적 대응 방안
A씨가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 청구 대상: 가해자인 팀장과 회사를 공동 피고로 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청구 내용: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병원 치료비, 상담 비용 등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700만 원에서 1,500만 원 사이의 위자료가 인정될 수 있으며, 성희롱의 지속성과 악의성이 입증되면 그 이상의 배상액도 가능합니다.
- 노동청 진정:
- 목적: 회사가 남녀고용평등법상 성희롱 발생 시 조치의무 등을 위반했음을 이유로 관할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 효과: 노동청 조사는 회사를 압박하여 문제 해결을 촉진하고, 조사 결과는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6.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주요 판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자 보호와 회사의 책임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주요 판례를 통해 법원의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 성희롱의 불법행위 성립 기준 (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판결)
법원은 성희롱을 일반 불법행위의 한 유형으로 보아, 행위의 위법성 여부에 따라 불법행위 성립을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성적 언동이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면 그 자체로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 회사의 사용자책임 및 피해자 보호 의무 (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직원의 성희롱 행위가 외형상 회사의 사무집행과 관련이 있다면 회사가 사용자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회사가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는 직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법한 행위이며, 회사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 회사의 신속한 조치의무와 2차 피해 방지 (서울고등법원 2018. 04. 20 선고 2017나2076631 판결)
법원은 회사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확인하면 지체 없이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염려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신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며, 이러한 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회사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7.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했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나요?
A: 네,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가 직접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제3자가 다른 사람들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이 불법입니다. 따라서 A씨의 녹취 파일은 법적 증거로 효력이 있습니다.
Q2: 동료들이 증언을 꺼리는데, 괜찮을까요?
A: 물론 동료의 증언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서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가해자가 직접 성희롱을 인정한 녹취 파일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 다른 간접적인 증거들도 보강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Q3: 성희롱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A: 우선 안전을 확보하고,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성희롱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6하 원칙). 가능하다면 녹취나 문자메시지 등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나 전문가(변호사, 상담기관)와 상담하여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Q4: 회사가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고 사건을 무마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회사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적절한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 자체가 위법입니다. 즉시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여 회사의 법적 의무 이행을 촉구하고, 동시에 변호사와 상담하여 민사소송 등 법적 절차를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Q5: 성희롱 피해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도 받을 수 있나요?
A: 네, 성희롱으로 인해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인정되면, 이는 실질적인 해고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가해자와 회사를 상대로 위자료뿐만 아니라 퇴사로 인해 발생한 소득 손실(일실수입)에 대한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한 개인의 인격을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행위이며, 이를 방치하는 회사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A씨의 사례처럼 용기를 내어 확보한 증거는 당신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혼자서 고통받지 마시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정당한 권리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전문 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