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 '형사공탁'으로 감형받을 수 있을까?

성범죄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피해자와의 ‘합의’는 양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하거나,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알 수 없어 합의 시도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보이고자 고려하는 제도가 바로 **’형사공탁’**입니다.

2022년 12월부터 시행된 형사공탁 특례 제도(공탁법 제5조의2)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법원에 돈을 맡길 수 있게 하여 피고인의 피해 회복 노력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범죄 사건에서 형사공탁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이 글은 성범죄 사건에서 형사공탁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성범죄 형사공탁

1. 형사공탁의 법적 근거: 공탁법 제5조의2 (형사공탁의 특례)

형사공탁은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된 공탁법 제5조의2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소나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알지 못해 합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특례 규정입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탁법 제5조의2)

  • 공탁 장소: 형사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 소재지의 공탁소에 공탁할 수 있습니다.
  • 인적사항 기재 생략: 공탁서에 피해자의 성명, 주소 등 인적사항 대신, 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 사건번호, 사건명, 그리고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예: ‘피해자 A’)를 기재할 수 있습니다.
  • 공탁 사실 통지: 법원은 공탁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고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에 대한 통지를 갈음할 수 있습니다.

공탁금 수령 방법: 피해자는 법원이나 검찰에서 ‘피공탁자(피해자)가 동일인임을 증명하는 서면’을 발급받아 공탁금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형사공탁

2. 형사공탁, 합의와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피해자의 의사’**입니다.

  • 합의: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의 의사가 합치된 결과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들이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 형사공탁: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법원에 돈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수단일 뿐, 피해자의 ‘용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형사공탁은 합의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며, 양형에 미치는 영향도 합의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판례] 형사공탁이 감경요소로 반영되려면?
법원은 “형사공탁을 형량의 감경요소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끝에 합의에 준할 정도로 피해를 회복시키거나 그 정도의 피해 회복이 확실시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춘천) 2023. 4. 26. 선고 2022노251 판결). 이는 단순히 돈을 공탁하는 행위를 넘어, 진정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범죄 형사공탁

3. 성범죄 사건에서 법원은 형사공탁을 어떻게 볼까요?

재산범죄와 달리, 성범죄는 재산적 피해뿐만 아니라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동반합니다. 이 때문에 법원은 성범죄 사건의 형사공탁을 매우 신중하게 판단합니다.

[판례] 성범죄 형사공탁에 대한 법원의 고민
한 법원은 준강제추행 사건에서 “사기죄와 같은 일반 재산범죄에서 부득이 피해자의 연락처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 피해자를 위하여 상당한 금액을 공탁하면 이를 양형에서 유리하게 고려할 수 있을 것임은 비교적 분명하나, 이 사건과 같은 성범죄에서 피해자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할 경우 형사공탁을 하면 이를 과연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 것인지, 한다면 얼마나 반영할 것인지 고민이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으로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조차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사정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추가하여 이 사건을 살핀다”고 하여, 제한적이나마 양형에 고려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 12. 선고 2020노3031 판결).

결국 성범죄에서 형사공탁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여지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큰 폭의 감형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성범죄 형사공탁

4.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피해자는 공탁 사실을 통지받은 후 공탁금을 수령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수령을 거부하고,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한다면 형사공탁의 양형상 유리한 효과는 거의 사라질 수 있습니다.

[판례] 피해자의 거부 의사가 명확한 경우
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1,000만 원을 형사공탁하자, 피해자는 즉시 ‘공탁금을 피고인이 회수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며 엄벌을 탄원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형사공탁이 유리한 양형조건으로 참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취지”로 해석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창원지방법원 2023. 5. 18. 선고 2022노2049 판결).

성범죄 형사공탁

5. 법원은 공탁에 대한 피해자 의견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나요?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공탁을 했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내 의견은 무시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법원은 공탁에 대한 피해자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청취해야 할까요?

형사소송법 제294조의 5가 2025. 1. 17.부터 시행되며, 이후 진행되는 공판절차에서는 법원이 피고인의 금전 공탁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의견을 청취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금전 공탁과 피해자 등의 의견 청취) ①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권리 회복에 필요한 금전을 공탁한 경우에는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ㆍ직계친족ㆍ형제자매를 포함한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그 의견을 청취하기 곤란한 경우로서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에 따른 의견 청취의 방법ㆍ절차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성범죄 형사공탁
성범죄 형사공탁

6. 형사공탁금, 민사소송에서는 어떻게 될까?

형사재판에서 공탁의 효과가 미미했다고 해서 공탁한 돈이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 절차에서 지급된 합의금이나 공탁금은 추후 진행될 수 있는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에서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인정됩니다.

즉,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면, 그 금액만큼은 이미 손해를 배상받은 것으로 취급됩니다. 나중에 피해자가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법원은 전체 손해배상액에서 피해자가 수령한 공탁금액을 공제하고 나머지 금액만 지급하라고 판결합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18. 05. 10 선고 2017가단18920 판결 참고).

따라서 형사공탁은 형사상 양형뿐만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미리 이행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7. 자주 묻는 질문 (FAQ)

Q1. 피해자 인적사항을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공탁하나요?
A. 위에서 설명한 공탁법 특례 조항에 따라, 피해자의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대신 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 사건번호, 사건명 등을 기재하여 공탁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추후 법원이나 검찰에서 ‘동일인 확인 증명서’를 발급받아 공탁금을 찾을 수 있습니다.

Q2. 공탁금은 얼마를 해야 적절한가요?
A.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다만, 피해의 정도, 범행의 중대성,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 등을 고려하여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보였다’고 인정될 만한 합리적인 금액을 책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적은 금액은 오히려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Q3. 공탁한 돈을 다시 돌려받을 수도 있나요?
A.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기 전에는 회수가 가능합니다(민법 제489조). 하지만 형사사건에서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만약 법원이 공탁 사실을 양형에 이미 반영했는데 피고인이 이를 회수한다면, 추후 다른 절차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Q4. 공탁을 하면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나요?
A. 피해자가 원치 않는 공탁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압박이나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공탁 사실을 빌미로 합의를 종용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명백한 2차 가해가 되며 양형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공탁은 진심 어린 반성을 바탕으로 한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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